하나님의 What vs. How
내가 How를 알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불확실한 것은 아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걱정하며 노심초사했을까? 오늘 다시 읽어보니,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아브라함은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해 하신 약속을 이루실 것이라 믿고 있었다.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고 말씀하신 뒤, 하나님은 바로 그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하신다.
두 말씀은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양립하기 어렵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이해할 수 없는 간극 속에서도 자신에게 주신 약속을 믿었다.
창 22:5 ...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창 22:8 ...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하면서도, 이삭이 자기와 함께 돌아오리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때 아브라함의 마음은 어땠을까? '오, 하나님이 나 시험하시네?' '어차피 안 죽이실 거니까 하라시는 대로 하자.'라는 생각이었을까? 아무리 큰 믿음이라도 긴가민가하지는 않았을까? '혹시 진짜 죽이시면 어떡하지...' 하고 말이다.
칼을 들어 실제로 아들을 잡으려는 순간, 하나님의 사자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불렀을 때는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했을까?
성경은 이때 아브라함의 감정을 자세히 말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그가 무엇을 믿고 있었는지는 알려준다.
히 11: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아브라함은 단순히 '설마 하나님이 정말 죽이시겠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다. 정말 죽이는 데까지 가더라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칼을 막으실지, 다른 제물을 주실지, 이삭이 죽는다면 다시 살리실지 아브라함은 몰랐다. 그러나 한 가지는 믿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해 하신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
'나는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이게 아브라함의 마음이었던 것 아닐까.
젊은 시절의 아브라함에게는 이것이 쉽지 않았다. 자녀를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How"에 집중해, 하갈을 통해 스스로 방법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수십 년이 흐른 뒤 아브라함은 달라졌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데도 자신이 '어떻게'를 해결하려 들지 않는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How는 하나님께 남겨둔다.
믿음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아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How도 What도 다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다. 그래도 하나님이 하신 약속과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는 것이다.
내가 How를 알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불확실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오늘 내게 주어진 말씀을 믿고 행해야겠다. How는 "여호와 이레"께 남겨두고.